우리는 왜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 경제적자유를 이루고 싶은 사람은 그토록 많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은 왜 소수에 불가한가. 목표를 이루는 사람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오랜친구와 절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선문답을 주고받다가 죽비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목표에 관한 깨달음을 얻어 글을 남긴다.
당신의 목표는 얼마나 명확한가
나는 불자가 아니다. 하지만 삶의 고뇌가 가득차면 이상하게 절을 찾게 된다. 산속에 있는 고요한 절을 찾으면 왠지 마음이편안해지고, 고민거리가 정리되기 때문. 오늘은 부산 근교 사찰인 양산에 위치한 금선사에서 절을 올렸다.
'부처님. 저와 제 가족들이 건강할 수 있게 지켜주세요......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과 욕망에서 벗어나야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부처의 앞에서 돈에 관해서 빈다는 것이 맘에 걸려 잠시 멈칫하며 고민했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던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의지하고 싶은 것이 인간기에.
'제 손실을 보고 있는 주식과 코인이 본전이라도 오게 해주세요.'
결국 내가 이토록 번뇌하고 고민하며 밤에 잠도 못자는 이유를 부처님께 고백하며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온 마음을 담아 간절히 절을 올린 후 대웅전에서 나와 친구와 잠시 얘기를 주고받다가 서로 자연스레 부처님께 무엇을 빌었는지를 친구와 얘기하게 되었는데, 나는 머뭇거리다 내 망해버린 투자들이 본전이라도 오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니 웃으면서 친구놈이 말하는게
"그렇게 어설프게 빌면 부처님도 애매하게 이루어주시더라."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말인가 싶어 반문하니 친구놈이 전에 내가 제발 취직좀 하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취직은 됐는데 내가 원하는 기업에 취직된 게 아니라 한참을 지나 말그대로 취직만 되었다고. 그래서 이번에는 정확히 언제까지 어디에 이직할 것인지를 빌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한테 이 소원 저 소원을 빌겠어. 부처님은 소원을 이루어주느라 바쁘다고, 그래서 소원이 대충오면 부처님도 거기에 맞게 대충 이루어주는거 아니겠어? 너 코인, 주식 그냥 올려달라고 빌었지? 그렇게 빌면 부처님은 한 5년 있다가, 아니면 니가 팔고나면 그때야 본전가에 올려놓으신다고."
"......."
반쯤 장난섞인 선문답이었지만, 나는 이때 정말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가 말하듯 내 본전이 5년이 있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수많은 현인들이 강조하는 것. 목표를 이룬 사람들이 늘 강조하는 것. 바로 언제까지? 즉 데드라인을 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데드라인이 없는 소원을 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루어질 턱이있나.
그리고 돌아보니 소원뿐만이 아니었다. 내 목표에는 대부분 언제까지라는 기한이 빠져있었다.
이루어지는 목표의 3원칙
'언젠가 부자가 될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겠다는 사람들이 이딴식의 애매모호한 목표를 정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있다. 이런 바람과 같은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부의 추월차선>을 쓴 엠제이 드마코, <돈>의 저자 보도섀퍼. 모두 목표를 이룰 때는 정확한 기준과 기한 그리고 방법을 포함해서 목표를 제시하고 결국 달성했다.
즉 좋은 목표는 반드시 정확한 달성 기준, 데드라인(기한), 달성 방법을 포함해야 한다.
목표를 이루는 사람들은 '언젠가', '부자' 같은 모호한 단어는 쓰지 않는다. 그들이 목표를 세우고 소원을 빌었다면 이렇게 빌었을 것이다.
'5년 안에 인터넷 사업으로 20억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1. 기한 : 5년 안에
2. 방법 : 인터넷 사업으로
3. 달성기준 : 20억
이것이 목표를 이루는 자와 이루지 못하는 자의 차이다. 부자들은 반드시 3원칙을 포함한 목표를 세우고 그래서 이루어진다.
잠재의식
나는 이후 부처님께 빌던, 달에게 빌던, 혼자서 목표를 되뇌이던 간에 절대로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같은 식의 소원은 절대로 빌지 않는다.
최근 읽었던 책 <역행자>에서 책을 쓴 자수성가 부자 자청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칠만큼 강한 자기암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원을 비는 행위역시 자기암시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우리가 소원을 빌 때 누구에게 비는지에게는 상관없이 늘 듣고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이 듣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제적자유와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목표의 3원칙에 입각해서 서 빌도록하자. 또한 자신의 목표가 달성기한과 달성방법, 달성기준이 명확한 목표인지를 항상 점검하고 생각해보자. 이상 오늘의 깨달음이다.